세상에서 가장 힘센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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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세상에서 가장 힘센 사나이(WSM)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남성들의 힘과 기술을 겨루는 대회이다. 1977년 시작되어, 다양한 종목을 통해 참가자들의 신체적 능력을 시험하며, 1970년대 미국 선수들의 독주, 1980년대 국제화와 욘 팔 시그마르손의 활약, 1990년대 스칸디나비아 선수들의 강세, 2000년대 마리우시 푸지아노프스키의 독주, 2010년대 지르드루나스 사비카스와 브라이언 쇼의 경쟁 등 시대를 거치며 변화해왔다. 역대 최다 우승자는 폴란드의 마리우시 푸지아노프스키이며, 미국, 아이슬란드, 영국 선수들이 강세를 보였다. 2008년에는 WSM 명예의 전당이 설립되어 역대 최고의 선수들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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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힘센 사나이 | |
---|---|
기본 정보 | |
![]() | |
창립 | 1977년 |
횟수 | 47회 |
포맷 | 다종목 경기 |
웹사이트 | 세계에서 가장 힘센 남자 공식 웹사이트 |
현재 대회 | 2024 세계에서 가장 힘센 남자 |
현재 챔피언 | 톰 스톨트만 |
2. 역사
WSM의 역사를 다룬 여러 다큐멘터리가 현재 나와 있다. 첫 번째 주요 다큐멘터리는 30주년을 기념하는 2008년작 《세상에서 가장 힘센 사나이 - 30년의 고통》이다.[9] 2017년에는 대회의 40주년을 기념하여 여러 편의 영상이 공개되었다.[10][11]
1977년, CBS와 랭스터 사가 처음으로 이 행사를 개최했다. 1982년 BBC가 해외에서 처음 소개했으며, 1987년부터 운영 단체를 TWI에 양도했다. 현재에 이른다. TV 방송은 인터내셔널 매니지먼트 그룹(IMG)에서 매년 12월 말에, 일본에서는 NHK BS1에서 다음 해 2월 말에 방송된다.
'''1970년대 ~ 1980년대: 미국 독점과 빌 카즈마이어의 시대'''
1977년 CBS와 랭스터 사가 "세상에서 가장 힘센 사나이"라는 개념을 고안하여 대회를 개최했다.[12] 초기 대회는 대부분 미국에서 개최되었으며, 주로 미식축구 선수, 파워리프터, 보디빌더들이 참가했다. 미국의 브루스 빌헬름이 1977년과 1978년 대회에서 2연패를 달성했다.[13] 1979년에는 전설적인 파워리프터 빌 카즈마이어가 3위를 차지하며 등장했고, 1980년부터 1982년까지 3연패를 달성하며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였다.[14] 그는 478.5kg 은화 데드리프트, 439.5kg 스쿼트, 165.6kg 통나무 들어 올리기 등 당시 세계 기록을 경신하며 WSM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빌 카즈마이어가 떠난 후, 영국의 제프 케이프스와 아이슬란드의 욘 파울 시그마르손이 경쟁을 벌였다. 제프 케이프스는 1983년과 1985년에, 욘 파울 시그마르손은 1984년과 1986년에 우승했다.[15] 욘 파울 시그마르손은 대회의 인기와 인지도를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렸으며, 1990년 4번째이자 마지막 WSM에서 우승한 지 3년 만에 사망했다. 1987년에는 대회가 열리지 않았고, 같은 해에 순수 스트렝스 대회가 열렸지만 WSM 프랜차이즈의 일부는 아니었다. 1989년에는 제이미 리브스가 우승했다.
1982년 BBC가 해외에서 처음 소개했으며, 1987년부터 운영 단체를 TWI에 양도했다.
'''1980년대 후반 ~ 1990년대: 국제화와 욘 파울 시그마르손의 시대'''
1980년대 초반, 빌 카즈마이어가 은퇴한 후, 영국의 제프 케이프스와 아이슬란드의 욘 파울 시그마르손이 번갈아 우승하며 경쟁 구도를 형성했다.[15] 제프 케이프스는 1983년과 1985년에, 욘 파울 시그마르손은 1984년과 1986년에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욘 파울 시그마르손은 대회의 인기와 인지도를 크게 높였다.[15] 1987년에는 순수 스트렝스 대회에서 욘 파울 시그마르손이 제프 케이프스와 빌 카즈마이어를 꺾고 우승하기도 했다. 1988년 WSM 대회에서는 빌 카즈마이어가 복귀했지만, 욘 파울 시그마르손이 3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1989년에는 제이미 리브스가 우승을 차지했다.
1983년 대회는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개최되며, 미국 외 지역에서 처음으로 개최되었다. 이후 스웨덴, 스페인 등 다양한 국가에서 개최되며 국제적인 대회로 발돋움했다.
1990년, 욘 파울 시그마르손은 논란이 많았던 마지막 종목인 100kg을 짊어지고 달리는 200m 경주에서 O.D. 윌슨을 근소하게 제치고 4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4회 우승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19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 스칸디나비아의 강세'''
1990년대 후반에는 핀란드의 요우코 아홀라(1997년, 1999년 우승), 스웨덴의 마그누스 사무엘손(1998년 우승), 핀란드의 얀네 비르타넨(2000년 우승) 등 스칸디나비아 출신 선수들이 강세를 보였다. 이 기간 동안 3년 만에 두 번의 타이틀을 획득한 요우코 아홀라는 이후 WSM/스트롱맨 이벤트의 심판이자 배우가 되었다. 마그누스 사무엘손은 1998년 WSM 대회에서 요우코 아홀라를 꺾은 유일한 선수가 되었다. 얀네 비르타넨은 요우코 아홀라가 은퇴한 후인 2000년에 타이틀을 차지했다. 2001년에는 노르웨이 출신 스벤 칼센이 우승하며, 2002년까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타이틀을 장악했다.
'''2000년대: 마리우시 푸지아노프스키의 독주'''
2000년대 초중반은 폴란드 출신 마리우시 푸지아노프스키가 "지배자"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독주했다.[19] 그는 근육질의 탄탄한 체격으로 스트롱맨의 정의를 재정립했다는 평가를 받았다.[19] 최대 142kg의 몸무게로 자신보다 훨씬 큰 선수들을 속도와 엄청난 힘을 결합한 경기력으로 압도했다.[19]
마리우시 푸지아노프스키는 2002년 대회에서 우승하며 스칸디나비아 선수들의 강세를 종식시켰다. 당시 지드루나스 사비카스와 라이몬즈 베르그마니스가 각각 2, 3위를 차지했다. 2003년에는 7개 종목 중 4개에서 1위, 2개에서 2위, 1개에서 3위를 기록하며 총점 66점으로 2위인 지드루나스 사비카스를 20점 차로 크게 따돌리고 우승했다.
2004년에는 바실 비라스트유크가 지드루나스 사비카스를 꺾고 우승했다. 마리우시 푸지아노프스키는 약물 검사에서 탈락하여 실격 처리되었다. 2005년, 마리우시 푸지아노프스키는 제시 마룬데를 제치고 우승했으며, 도미닉 필리우는 3위를 차지하여 1990년 O.D. 윌슨 이후 비유럽인 최초로 WSM 시상대에 올랐다.
2006년에는 필 프피스터가 마지막 5개 이벤트를 연달아 우승하며 마리우시 푸지아노프스키를 제치고 우승했다. 그는 1982년 이후 이 대회에서 우승한 최초의 미국인이자 미국 외 지역에서 우승한 최초의 미국인이 되었다. 마리우시 푸지아노프스키는 2007년과 2008년 대회에서 연속 우승하며 총 5회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2009년에는 지드루나스 사비카스가 마리우시 푸지아노프스키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였고, 브라이언 쇼는 3위를 기록했다.
'''2010년대: 지드루나스 사비카스와 브라이언 쇼의 경쟁'''
2009년, IFSA/WSM 분열이 종료되면서 전 세계 최고의 스트롱맨 선수들이 다시 WSM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20] 리투아니아의 지드루나스 사비카스는 2009년, 2010년[20], 2012년[21], 2014년 대회에서 우승하며 총 4회 우승을 달성했다. 특히 2010년에는 브라이언 쇼와 동점을 기록했으나, 카운트백 방식으로 WSM 역사상 가장 근소한 차이로 우승했다.[20] 미하일 코클랴예프는 WSM 데뷔 무대에서 3위를 차지했으며, 지드루나스 사비카스는 거대한 나무 통 들어올리기에서 210kg을 들어올려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21] 2012년에는 로그 리프트에서 220kg을 들어올리며 또다시 세계 신기록을 경신했다.[21]
미국의 브라이언 쇼는 2011년[20], 2013년, 2015년, 2016년[20] 대회에서 우승하며 총 4회 우승을 달성, 지드루나스 사비카스와 치열한 경쟁 구도를 형성했다. 2011년 대회에서는 지드루나스 사비카스와 최종 이벤트에서 동점을 기록했으나, 아틀라스 스톤에서 지드루나스 사비카스를 꺾고 첫 번째 타이틀을 차지했다.[20] 이후 4년 동안 두 선수는 타이틀을 주고받았다. 2014년 대회는 WSM 역사상 가장 치열한 경쟁 중 하나였으며, 지드루나스 사비카스는 하프소르 율리우스 비요른손보다 단 0.5점, 브라이언 쇼보다 3점 차이로 우승하며 38세 8개월의 나이로 역대 최고령 우승자가 되었다.
2017년에는 에디 홀이 하프소르 율리우스 비요른손을 1점 차로 꺾고 우승하며, 1993년 개리 테일러 이후 영국에서 처음으로 우승했다. 에디 홀은 또한 스트랩만 사용하여 수행한 472.5kg의 일반 바를 이용한 새로운 스트롱맨 데드리프트 세계 기록을 세웠다. 하프소르 율리우스 비요른손은 세 번의 3위와 세 번의 2위 기록 끝에[22][23] 2018년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며, 1996년 마그누스 베르 마그누손 이후 처음으로 아이슬란드인이 타이틀을 획득했다.
2019년 대회는 플로리다주 브레이든턴에서 열렸으며,[24][25] 마틴스 리시스가 우승하고, 전년도 챔피언 하프소르 율리우스 비요른손이 3위를 차지했다. 마테우시 키엘리슈코프스키는 2년 연속 준우승을 차지했다. 형제 톰과 루크 스톨트만이 모두 결승에 진출하여 역사상 처음으로 형제가 모두 결승에 진출했다. 새로운 형식은 25명의 경쟁자만 참가하고, 전체 경기는 4일 동안 진행되었으며, 결승전은 5개의 이벤트로 축소되어 단 하루만 진행되었다.[26]
'''2010년대 후반 ~ 2020년대: 새로운 강자들의 등장'''
2017년 대회에서는 에디 홀이 하프토르 율리우스 비요른손을 1점 차로 꺾고 우승하며, 1993년 개리 테일러 이후 영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WSM 타이틀을 차지했다.[22] 에디 홀은 스트랩만 사용하여 수행한 472.5kg의 일반 바를 이용한 새로운 스트롱맨 데드리프트 세계 기록을 세웠다.[23]
2018년에는 하프토르 율리우스 비요른손이 세 번의 3위와 세 번의 2위 기록 끝에 우승을 차지했으며, 1996년 마그누스 베르 마그누손 이후 처음으로 아이슬란드인이 타이틀을 획득했다.[22][23] 폴란드의 마테우시 키엘리슈코프스키가 2위, 미국의 4번 우승자인 브라이언 쇼가 3위를 차지했다.[24][25]
2019년 대회는 플로리다주 브레이든턴에서 개최되었으며,[24][25] 미국 출신인 마틴스 리시스가 우승했다. 전년도 챔피언 하프토르 율리우스 비요른손은 예선에서 족저 근막염 부상을 입었지만 3위를 차지했고, 마테우시 키엘리슈코프스키가 2년 연속 준우승을 차지했다.[26]
코로나19 범유행으로 인해 2020년 대회는 11월로 연기되었다.[27] 2020년 대회는 안나 마리아 섬에서 개최되었으며, 올렉시 노비코프가 우승하며 새로운 챔피언에 등극했다.[27] 톰 스톨트먼은 2위를, 장-프랑수아 카론이 3위를 차지했다.[34][35]
2021년 대회는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에서 열렸다.[36] 톰 스톨트먼이 브라이언 쇼를 꺾고 우승하여 이 대회에서 우승한 최초의 스코틀랜드인이 되었다.[37]
2022년 대회는 다시 새크라멘토에서 열렸으며, 톰 스톨트먼이 마틴스 리치스와 올렉시 노비코프를 꺾고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38][39]
2023년 대회는 사우스캐롤라이나 머틀 비치에서 처음으로 개최되었다.[40][41] 미첼 후퍼가 우승을, 톰 스톨트먼이 2위, 올렉시 노비코프는 3위를 차지했다.
2024년 대회는 다시 한 번 사우스캐롤라이나 머틀 비치에서 개최되었다.[42][43] 톰 스톨트먼은 3개의 결승 종목에서 1위를 차지하며 세상에서 가장 힘센 사나이 타이틀을 되찾았고, 최소 3번 이상 이 타이틀을 보유한 7명의 선수 중 한 명이 되었다.
2. 1. 1970년대 ~ 1980년대: 미국 독점과 빌 카즈마이어의 시대
1977년 CBS와 랭스터 사가 "세상에서 가장 힘센 사나이"라는 개념을 고안하여 대회를 개최했다.[12] 초기 대회는 대부분 미국에서 개최되었으며, 주로 미식축구 선수, 파워리프터, 보디빌더들이 참가했다. 미국의 브루스 빌헬름이 1977년과 1978년 대회에서 2연패를 달성했다.[13] 1979년에는 전설적인 파워리프터 빌 카즈마이어가 3위를 차지하며 등장했고, 1980년부터 1982년까지 3연패를 달성하며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였다.[14] 그는 478.5kg 은화 데드리프트, 439.5kg 스쿼트, 165.6kg 통나무 들어 올리기 등 당시 세계 기록을 경신하며 WSM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카즈마이어가 떠난 후, 영국의 제프 케이프스와 아이슬란드의 욘 파울 시그마르손이 경쟁을 벌였다. 케이프스는 1983년과 1985년에, 시그마르손은 1984년과 1986년에 우승했다.[15] 시그마르손은 대회의 인기와 인지도를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렸으며, 1990년 4번째이자 마지막 WSM에서 우승한 지 3년 만에 사망했다. 1987년에는 대회가 열리지 않았고, 같은 해에 순수 스트렝스 대회가 열렸지만 WSM 프랜차이즈의 일부는 아니었다. 1989년에는 제이미 리브스가 우승했다.
1982년 BBC가 해외에서 처음 소개했으며, 1987년부터 운영 단체를 TWI에 양도했다.
2. 2. 1980년대 후반 ~ 1990년대: 국제화와 욘 파울 시그마르손의 시대
1980년대 초반, 빌 카즈마이어가 은퇴한 후, 영국의 제프 케이프스와 아이슬란드의 욘 파울 시그마르손이 번갈아 우승하며 경쟁 구도를 형성했다.[15] 케이프스는 1983년과 1985년에, 시그마르손은 1984년과 1986년에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시그마르손은 대회의 인기와 인지도를 크게 높였다.[15] 1987년에는 순수 스트렝스 대회에서 시그마르손이 케이프스와 카즈마이어를 꺾고 우승하기도 했다. 1988년 WSM 대회에서는 카즈마이어가 복귀했지만, 시그마르손이 3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1989년에는 제이미 리브스가 우승을 차지했다.1983년 대회는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개최되며, 미국 외 지역에서 처음으로 개최되었다. 이후 스웨덴, 스페인 등 다양한 국가에서 개최되며 국제적인 대회로 발돋움했다.
1990년, 욘 파울 시그마르손은 논란이 많았던 마지막 종목인 100kg을 짊어지고 달리는 200m 경주에서 O.D. 윌슨을 근소하게 제치고 4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4회 우승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2. 3. 19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 스칸디나비아의 강세
1990년대 후반에는 핀란드의 요우코 아홀라(1997년, 1999년 우승), 스웨덴의 마그누스 사무엘손(1998년 우승), 핀란드의 얀네 비르타넨(2000년 우승) 등 스칸디나비아 출신 선수들이 강세를 보였다. 이 기간 동안 3년 만에 두 번의 타이틀을 획득한 요우코 아홀라는 이후 WSM/스트롱맨 이벤트의 심판이자 배우가 되었다. 마그누스 사무엘손은 1998년 WSM 대회에서 요우코 아홀라를 꺾은 유일한 선수가 되었다. 얀네 비르타넨은 요우코 아홀라가 은퇴한 후인 2000년에 타이틀을 차지했다. 2001년에는 노르웨이 출신 스벤 칼센이 우승하며, 2002년까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타이틀을 장악했다.2. 4. 2000년대: 마리우시 푸지아노프스키의 독주
2000년대 초중반은 폴란드 출신 마리우시 푸지아노프스키가 "지배자"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독주했다.[19] 그는 근육질의 탄탄한 체격으로 스트롱맨의 정의를 재정립했다는 평가를 받았다.[19] 최대 142kg의 몸무게로 자신보다 훨씬 큰 선수들을 속도와 엄청난 힘을 결합한 경기력으로 압도했다.[19]마리우시 푸지아노프스키는 2002년 대회에서 우승하며 스칸디나비아 선수들의 강세를 종식시켰다. 당시 지드루나스 사비카스와 라이몬즈 베르그마니스가 각각 2, 3위를 차지했다. 2003년에는 7개 종목 중 4개에서 1위, 2개에서 2위, 1개에서 3위를 기록하며 총점 66점으로 2위인 지드루나스 사비카스를 20점 차로 크게 따돌리고 우승했다.
2004년에는 바실 비라스트유크가 지드루나스 사비카스를 꺾고 우승했다. 마리우시 푸지아노프스키는 약물 검사에서 탈락하여 실격 처리되었다. 2005년, 마리우시 푸지아노프스키는 제시 마룬데를 제치고 우승했으며, 도미닉 필리우는 3위를 차지하여 1990년 O.D. 윌슨 이후 비유럽인 최초로 WSM 시상대에 올랐다.
2006년에는 필 프피스터가 마지막 5개 이벤트를 연달아 우승하며 마리우시 푸지아노프스키를 제치고 우승했다. 그는 1982년 이후 이 대회에서 우승한 최초의 미국인이자 미국 외 지역에서 우승한 최초의 미국인이 되었다. 마리우시 푸지아노프스키는 2007년과 2008년 대회에서 연속 우승하며 총 5회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2009년에는 지드루나스 사비카스가 마리우시 푸지아노프스키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였고, 브라이언 쇼는 3위를 기록했다.
2. 5. 2010년대: 지드루나스 사비카스와 브라이언 쇼의 경쟁
2009년, IFSA/WSM 분열이 종료되면서 전 세계 최고의 스트롱맨 선수들이 다시 WSM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20] 리투아니아의 지드루나스 사비카스는 2009년, 2010년[20], 2012년[21], 2014년 대회에서 우승하며 총 4회 우승을 달성했다. 특히 2010년에는 브라이언 쇼와 동점을 기록했으나, 카운트백 방식으로 WSM 역사상 가장 근소한 차이로 우승했다.[20] 미하일 코클랴예프는 WSM 데뷔 무대에서 3위를 차지했으며, 사비카스는 거대한 나무 통 들어올리기에서 210kg을 들어올려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21] 2012년에는 로그 리프트에서 220kg을 들어올리며 또다시 세계 신기록을 경신했다.[21]미국의 브라이언 쇼는 2011년[20], 2013년, 2015년, 2016년[20] 대회에서 우승하며 총 4회 우승을 달성, 사비카스와 치열한 경쟁 구도를 형성했다. 2011년 대회에서는 지드루나스 사비카스와 최종 이벤트에서 동점을 기록했으나, 아틀라스 스톤에서 사비카스를 꺾고 첫 번째 타이틀을 차지했다.[20] 이후 4년 동안 두 선수는 타이틀을 주고받았다. 2014년 대회는 WSM 역사상 가장 치열한 경쟁 중 하나였으며, 사비카스는 하프소르 율리우스 비요른손보다 단 0.5점, 쇼보다 3점 차이로 우승하며 38세 8개월의 나이로 역대 최고령 우승자가 되었다.
2017년에는 에디 홀이 하프소르 율리우스 비요른손을 1점 차로 꺾고 우승하며, 1993년 개리 테일러 이후 영국에서 처음으로 우승했다. 홀은 또한 스트랩만 사용하여 수행한 472.5kg의 일반 바를 이용한 새로운 스트롱맨 데드리프트 세계 기록을 세웠다. 하프소르 율리우스 비요른손은 세 번의 3위와 세 번의 2위 기록 끝에[22][23] 2018년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며, 1996년 마그누스 베르 마그누손 이후 처음으로 아이슬란드인이 타이틀을 획득했다.
2019년 대회는 플로리다주 브레이든턴에서 열렸으며,[24][25] 마틴스 리시스가 우승하고, 전년도 챔피언 하프소르 율리우스 비요른손이 3위를 차지했다. 마테우시 키엘리슈코프스키는 2년 연속 준우승을 차지했다. 형제 톰과 루크 스톨트만이 모두 결승에 진출하여 역사상 처음으로 형제가 모두 결승에 진출했다. 새로운 형식은 25명의 경쟁자만 참가하고, 전체 경기는 4일 동안 진행되었으며, 결승전은 5개의 이벤트로 축소되어 단 하루만 진행되었다.[26]
2. 6. 2010년대 후반 ~ 2020년대: 새로운 강자들의 등장
2017년 대회에서는 에디 홀이 하프토르 율리우스 비요른손을 1점 차로 꺾고 우승하며, 1993년 개리 테일러 이후 영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WSM 타이틀을 차지했다.[22] 에디 홀은 스트랩만 사용하여 수행한 472.5kg의 일반 바를 이용한 새로운 스트롱맨 데드리프트 세계 기록을 세웠다.[23]2018년에는 하프토르 율리우스 비요른손이 세 번의 3위와 세 번의 2위 기록 끝에 우승을 차지했으며, 1996년 마그누스 베르 마그누손 이후 처음으로 아이슬란드인이 타이틀을 획득했다.[22][23] 폴란드의 마테우시 키엘리슈코프스키가 2위, 미국의 4번 우승자인 브라이언 쇼가 3위를 차지했다.[24][25]
2019년 대회는 플로리다주 브레이든턴에서 개최되었으며,[24][25] 미국 출신인 마틴스 리시스가 우승했다. 전년도 챔피언 하프토르 율리우스 비요른손은 예선에서 족저 근막염 부상을 입었지만 3위를 차지했고, 마테우시 키엘리슈코프스키가 2년 연속 준우승을 차지했다.[26]
코로나19 범유행으로 인해 2020년 대회는 11월로 연기되었다.[27] 2020년 대회는 안나 마리아 섬에서 개최되었으며, 올렉시 노비코프가 우승하며 새로운 챔피언에 등극했다.[27] 톰 스톨트먼은 2위를, 장-프랑수아 카론이 3위를 차지했다.[34][35]
2021년 대회는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에서 열렸다.[36] 톰 스톨트먼이 브라이언 쇼를 꺾고 우승하여 이 대회에서 우승한 최초의 스코틀랜드인이 되었다.[37]
2022년 대회는 다시 새크라멘토에서 열렸으며, 톰 스톨트먼이 마틴스 리치스와 올렉시 노비코프를 꺾고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38][39]
2023년 대회는 사우스캐롤라이나 머틀 비치에서 처음으로 개최되었다.[40][41] 미첼 후퍼가 우승을, 톰 스톨트먼이 2위, 올렉시 노비코프는 3위를 차지했다.
2024년 대회는 다시 한 번 사우스캐롤라이나 머틀 비치에서 개최되었다.[42][43] 톰 스톨트먼은 3개의 결승 종목에서 1위를 차지하며 세상에서 가장 힘센 사나이 타이틀을 되찾았고, 최소 3번 이상 이 타이틀을 보유한 7명의 선수 중 한 명이 되었다.
3. 경기 종목
세상에서 가장 힘센 사나이(WSM) 대회는 선수들의 극한의 힘과 기술을 시험하는 다양한 종목으로 구성된다.[45][46]
초기에는 다양한 스포츠 및 근력 훈련을 대표하는 8명의 선수가 참가하여 각자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초기 이벤트는 비교적 단순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파워리프팅과 하이랜드 게임의 헤비 이벤트, 그리고 신화 속 힘의 업적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종목들이 도입되었다.[45][46]
주요 종목으로는 다음이 있다:
- '''로딩 메들리''': 220-330파운드(약 100-150kg) 무게의 여러 무거운 물체를 10-30미터 정도의 코스를 따라 운반하거나 끌어서 트럭 침대나 플랫폼에 싣는다.[47]
- '''아틀라스 스톤''': 220-350파운드(약 100-159kg) 무게의 둥근 돌 5개를 들어 플랫폼에 올려놓는다. 돌의 위치와 플랫폼의 높이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된다.[48] 2015년 대회에서는 가장 무거운 돌의 무게가 209kg이었다.[49]
- '''차량 당기기''': 수송 트럭, 트램, 버스, 비행기 등을 100피트(약 30미터) 코스에서 빠르게 당긴다. 로프를 사용하거나, 하네스를 연결하여 당기는 등 다양한 방식이 있다.[50] 2007년 대회에서는 소방차를, 2008년 예선에서는 석탄 트럭을 당기는 경기가 있었다.[51]
- '''오버헤드 프레스''': 무거운 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거나, 가벼운 무게로 반복한다.[52]
- '''핑갈의 손가락''': 경첩이 달린 기둥("손가락")을 수평 위치에서 들어 올려 반대쪽으로 뒤집는다. 시간과 뒤집은 기둥 수로 점수를 매긴다. 이 종목은 신화 속 전사 핑갈의 이름에서 유래했다.[53]
- '''파워 계단''': 400-600파운드(약 181-272kg) 무게의 장치를 계단 꼭대기까지 들어 올린다.[54]
- '''스쿼트''': 벽돌, 자동차, 사람 등이 올려진 플랫폼을 스쿼트한다. 무게를 추가하는 장치를 사용하기도 한다.[55]
- '''데드리프트''': 무거운 물체나 차량을 땅에서 들어 올려 무릎을 펴고 선 자세를 유지한다. 최대 무게, 반복 횟수, 유지 시간 등으로 점수를 매긴다.[56][57]
- '''케그 던지기''': 무게가 다른 케그를 14피트 6인치(약 4.42미터) 높이의 바 위로 던진다.[58] 2015년에는 케틀벨, 2017년에는 금괴를 사용한 적도 있다.[59]
- '''바 넘기기''': 56파운드(약 25kg) 무게를 머리 위로 던져 장벽을 넘긴다.
- '''바 벤딩''': 긴 철봉을 구부린다.
- '''자동차 운반''': 지붕과 바닥 등이 제거된 차 안에서 차를 운반한다.[60]
- '''헤라클레스 홀드''': 경첩이 달린 기둥이 옆으로 넘어지지 않도록 손잡이를 잡고 버틴다.[61]
- '''운반 및 드래그''': 앵커와 체인을 운반하고 연결하여 드래그한다.[62]
- '''파머스 워크''': 양손에 275-375파운드(약 125-170kg) 무게의 물체(모루 등)를 들고 정해진 거리를 이동한다. 더 무거운 무게를 사용하는 '자이언트 파머스 워크'도 있다.[63] 2001년 대회에서는 회전 코스를 사용하기도 했다.[64]
- '''슈퍼 요크''': 크로스바와 수직 지지대에 무거운 무게(냉장고, 디젤 엔진 등)가 부착된 장치를 어깨에 메고 짧은 거리를 운반한다.[65]
- '''후사펠 스톤''': 약 410파운드(약 186kg)의 평평하고 삼각형 모양의 돌을 가슴 높이로 들고 이동한다. 아이슬란드의 유명한 돌에서 이름을 따왔으며, 아프리카에서 대회가 열렸을 때는 '아프리카 스톤'으로 불리기도 했다. 2017년에는 '코끼리 운반'이라고 불렸다.[66]
- '''덕 워크''': 다리 사이에 매달린 손잡이가 있는 물체를 운반한다.[67]
- '''로그 던지기 / 카버 토스''': 5미터 길이의 통나무를 던져 거리나 높이를 측정한다.[68]
- '''줄다리기''': 일대일 줄다리기. 초기 대회에서는 챔피언 결정전이었다.[69]
- '''폴 푸싱''': 스모 링에서 일대일로 막대기를 밀어낸다.[70]
- '''십자가''': 양쪽으로 무게를 들고 버틴다.[70]
- '''자이언트 덤벨 프레스''': 한 손 덤벨을 땅에서 어깨까지 들어 올린 후, 한 손으로 머리 위로 들어 올린다.[71]
- '''바스크 서클/스톤 서클/코난의 바퀴''': 금속 바구니의 손잡이를 팔뚝에 걸고 시계 방향으로 운반한다. 바구니 안에는 무거운 돌(최소 600파운드, 약 272kg)이 들어 있으며, 2015년에는 돌 대신 파인애플을 사용하기도 했다.[70]
- '''노르스 해머''': 토르의 망치 모양의 해머 3개를 뒤집는 종목. 핑갈의 손가락과 유사하지만, 옆에서 들어 올려야 한다. 3개의 해머 무게는 각각 350, 365, 380파운드이다.[72]
- '''서커스 바벨''': 서커스 스트롱맨이 사용하는 바벨과 유사한 장치를 들어 올린다. 150kg 무게의 바벨은 두 개의 구체와 두껍고 유연한 바벨로 구성되어 있다.[73]
2017년부터 예선 형식에 변화가 있었다. 5개 이벤트 후 리더는 결승 진출을 확정하고, 최하위 선수는 탈락한다. 이후 '라스트 맨 스탠딩' 이벤트를 통해 두 번째 결승 진출자를 결정한다.[74] 2018년과 2019년 대회에서는 아틀라스 스톤 이벤트를 변형하여 두 번째 결승 진출자를 가렸다.
4. 역대 챔피언 및 기록
역대 챔피언 및 기록 부분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힘센 사나이" 대회의 역대 우승자, 준우승자, 3위, 개최 도시, 국가별 우승 횟수, 그리고 다양한 기록들을 살펴본다.
챔피언 | 국가 | 횟수 | 연도 |
---|---|---|---|
마리우시 푸지아노프스키 | 5 | 2002, 2003, 2005, 2007, 2008 | |
욘 파울 시그마르손 | 4 | 1984, 1986, 1988, 1990 | |
마그누스 베르 마그누손 | 4 | 1991, 1994, 1995, 1996 | |
지르드루나스 사비카스 | 4 | 2009, 2010, 2012, 2014 | |
브라이언 쇼 | 4 | 2011, 2013, 2015, 2016 | |
빌 카즈마이어 | 3 | 1980, 1981, 1982 | |
톰 스톨트먼 | 3 | 2021, 2022, 2024 | |
브루스 빌헬름 | 2 | 1977, 1978 | |
제프 케이프스 | 2 | 1983, 1985 | |
요우코 아홀라 | 2 | 1997, 1999 |
- 최다 우승: 마리우시 푸지아노프스키 (폴란드, 5회)
- 4회 우승: 욘 파울 시그마르손 (아이슬란드), 마그누스 베르 마그누손 (아이슬란드), 지드루나스 사비카스 (리투아니아), 브라이언 쇼 (미국)
- 3회 우승: 빌 카즈마이어 (미국), 톰 스톨트만 (영국)
국가 | 금메달 | 은메달 | 동메달 | 합계 | ||||||||||||||
---|---|---|---|---|---|---|---|---|---|---|---|---|---|---|---|---|---|---|
12 | 9 | 11 | 32 | |||||||||||||||
9 | 7 | 5 | 21 | |||||||||||||||
8 | 4 | 8 | 20 | |||||||||||||||
5 | 5 | 0 | 10 | |||||||||||||||
4 | 7 | 0 | 11 | |||||||||||||||
3 | 3 | 5 | 11 | |||||||||||||||
2 | 0 | 3 | 5 | |||||||||||||||
1 | 3 | 4 | 8 | |||||||||||||||
#REDIRECT | 1 | 2 | 4 | 7 | ||||||||||||||
1 | 2 | 3 | 6 | |||||||||||||||
1 | 1 | 1 | 3 | |||||||||||||||
#REDIRECT | 0 | 2 | 0 | 2 | ||||||||||||||
#REDIRECT | 0 | 1 | 1 | 2 | ||||||||||||||
0 | 1 | 0 | 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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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 || 0 || 1 || 1 |}
오스트레일리아, 불가리아, 에스토니아, 페로 제도, 피지, 프랑스, 조지아, 독일, 그레나다, 헝가리, 이란, 이스라엘, 이탈리아, 케냐, 나미비아, 뉴질랜드, 나이지리아, 사모아,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그리고 멕시코는 2024년 기준으로 10위 안에 들었지만 아직 메달을 획득하지 못했다. 통계는 2024년 세계 최강 사나이(WSM) 대회를 기준으로 작성되었다.
5. 명예의 전당
WSM 명예의 전당은 대회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경쟁자들을 기리기 위해 2008년에 설립되었다.[75] 2024년 현재, 스벤 칼슨, 빌 카즈마이어, 마리우시 푸지아노프스키, 마그누스 베르 마그누손, 마그누스 사무엘손, 욘 팔 시그마르손, 제프 케이프스, 그리고 지드루나스 사비츠카스가 헌액되었다.[75][76][77]
참조
[1]
웹사이트
The Worlds Strongest Man Official Website
http://www.theworlds[...]
Theworldsstrongestman.com
2012-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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